빌립보서 강해

빌립보서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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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를 배우고, 살아내고, 신실하게 지켜가는 것입니다.

1강. 교회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공동체입니다.

빌립보서 1:1-11

오늘의 질문

교회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조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친히 시작하신 공동체입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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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자신과 디모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소개하며, 빌립보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출발점을 발견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든 조직도 아니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기로 결정해서 생긴 단체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교회를 세우고 싶은가?”를 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교회를 어떻게 시작하셨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바울은 6절에서 이것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교회를 시작하시고, 그 안에서 계속 일하시며, 마침내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우리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계속 이루어가시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사람의 참여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분의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복음 안에서 동역자였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와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지고, 그들이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며, 그들의 삶이 의의 열매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교회가 단순히 현재 상태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계속 자라가는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성장은 단지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이 깊어지고 그리스도의 열매가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이것이 내가 원하는 교회인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는 무엇이며, 나는 그 지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취향대로 교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를 배우고, 살아내고, 함께 세워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고백이 우리 공동체가 결정을 내리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요?
  2. 나는 교회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 소비자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책임 있는 지체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는 교회에 대해 원하는 바를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이 공동체를 통해 무엇을 이루기 원하십니까?”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우리가 소유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공동체입니다.”

2강. 교회는 복음을 위해 존재합니다.

빌립보서 1:12-30

오늘의 질문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한 가지로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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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의 사역은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이제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르게 봅니다.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환경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계속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갇힌 것이 온 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형제들이 두려움 없이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선한 뜻으로, 어떤 이들은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는 전파되나니” 이 일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에게 자신의 사역이나 명성, 인정받는 것보다 복음이 얼마나 더 중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는 복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배, 교육, 교제, 봉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살아내며, 그 복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라도 복음이 중심에 있지 않다면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연합하고, 고난 중에도 믿음에 굳게 서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포함합니다. 복음은 교회가 말로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교회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는 단지 “어떻게 우리 교회를 지킬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이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교회의 중심이 우리 자신에서 그리스도로 옮겨질 때, 교회의 목적은 더 이상 상황이나 성공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교회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그 자리에서 어떻게 복음에 동참하고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우리 교회의 어떤 사역이 복음의 목적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까?
  2. 교회가 주로 자기 유지에만 집중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는 한 사람을 정해, 말뿐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작은 행동을 통해 복음을 나타내 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존재합니다.”

3강.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습니다.

빌립보서 2:1-11

오늘의 질문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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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2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연합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연합은 단순히 같은 의견을 가지거나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뜻을 합하고 한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길을 제시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교회의 연합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단지 “서로 잘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곧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그 권리를 붙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단순히 예수님이 한때 느끼셨던 감정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옳은가?”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를 묻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여기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세워질 수 있을까?”를 묻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확신이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겸손은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신 채로 자신을 낮추셨듯, 우리도 우리의 확신과 은사를 공동체 안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단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교회는 단지 조직과 규칙만으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같은 예배와 신앙고백을 공유한다고 해서 저절로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는 법을 배울 때 연합은 눈에 보이게 됩니다. 약함을 참아 주고, 필요할 때 자신의 선호를 내려놓으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때로는 먼저 사과하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후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는 사실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서로 위에 서려고 경쟁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세우기 위해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는 공동체입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그리스도의 겸손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의견 차이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어떻게 형성해야 합니까?
  2. 실제 관계에서 내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자신을 방어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를 물어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품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갑니다.”

4강. 교회는 복음을 삶으로 살아냅니다.

빌립보서 2:12-30

오늘의 질문

교회가 일상 속에서 복음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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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친 후, 바울은 그 마음이 일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이 우리의 생각과 말, 선택과 관계 속에서 눈에 보이게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삶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믿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우리 믿음의 실체는 까다로운 사람을 대할 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혹은 부담스러운 책임이 주어졌을 때 드러납니다. 복음은 예배 시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일상 속에서 지니는 태도를 형성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며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들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물러나 있으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다르게 살아냄으로써 복음을 드러내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원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를 선택하고, 경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섬기며, 손해를 피하기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 모두가 복음의 눈에 보이는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살아 있는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디모데는 자기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했고,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섬겼습니다. 이들의 삶은 복음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복음은 단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바꿉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복음을 살아낸다”는 말은,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예배와 가르침 속에서 전해진 복음은 우리의 인간관계와 가정, 일터와 일상의 선택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속에서 드러나야 하며, 복음의 능력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함을 지켜내는 모습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단지 복음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 이상입니다. 교회는 복음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때,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빛이 됩니다.

복음은 우리가 선포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복음이 우리의 말과 태도, 선택을 형성해야 하는 일상적인 상황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교회는 지체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어떻게 복음을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습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 가정, 일터, 혹은 교회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상황 하나를 정해, 의도적으로 복음이 당신의 반응을 형성하도록 해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복음은 교회가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5강.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빌립보서 3:1-11

오늘의 질문

교회는 무엇을 자랑해야 하며, 결코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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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3장에서 바울은 할례와 율법 준수 같은 종교적 자격을 신뢰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한 경고를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만일 누군가 그런 것들을 자랑할 수 있다면, 자신이 더욱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이며,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자신이 의지했던 이전의 근거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종교적 이력이나 봉사,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해줍니다. 교회의 자랑은 규모나 역사, 프로그램이나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할 때 생깁니다. 만일 교회가 “우리 교회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질문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면, 교회의 중심은 이미 옮겨진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이나 봉사, 리더십, 성경 지식을 은연중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인 것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정보 이상을 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단지 그분에 관한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삶의 중심에 두고 점점 더 그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교회는 사람의 봉사나 성취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잊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의 봉사와 믿음과 성장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 안에 서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자랑은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교회나 개인이 그리스도 외에 무의식중에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2.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 그분께로 시선을 돌려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의 가장 큰 자랑은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6강. 교회는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갑니다.

빌립보서 3:12-21

오늘의 질문

교회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계속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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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이전에 의지했던 것들을 해로 여겼다고 고백한 후, 바울은 자신이 이미 온전해진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합니다. 오랜 신앙생활과 사역의 세월을 지낸 후에도 바울은 자기만족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그분을 더욱 닮아가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주신 부르심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지만, 과거 속에 머물러 살지 않습니다. 역사와 전통, 과거에 경험한 은혜는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현재의 믿음과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를 기억하면서도,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디로 부르고 계신지를 계속 물어야 합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이는 과거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히지도,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오늘의 교회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또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을 도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속한 곳과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충성과 소망이 그리스도께 있기에, 우리의 현재의 삶도 그분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더 신실하게 순종하며,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계속해서 그분께 맞추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화의 기준은 시대의 유행이나 다른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이미 다 이룬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라가고 있으며, 교회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핵심 질문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교회는 과거의 영광 속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과거를 신실하게 기억하는 것과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2.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교회를 어떤 부분에서 자라고 나아가도록 부르고 계실까요?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는 교회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디로 자라고, 순종하고, 나아가도록 부르고 계신가?”를 물어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과거의 영광 속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7강. 교회는 서로를 품습니다.

빌립보서 4:1-9

오늘의 질문

갈등과 차이가 생길 때에도 교회가 서로를 품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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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빌립보서 4장은 교회 안에 실제로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정확히 왜 의견 차이를 보였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 갈등을 숨기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갈등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를 품는다”는 말은 갈등이 없는 교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성격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갈등을 겪을 때, 단순히 관계를 끊거나 떠나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연합을 다시 구합니다. 바울은 두 여성에게 누가 옳은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찾으라고 부릅니다.

이 권면 가운데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합니다. 관용은 모든 잘못을 괜찮다고 여기거나 모든 차이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오직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연합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함께 머물기를 선택하는 데서 옵니다.

바울은 또한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흔히 먼저 상대방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상대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교회에게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공동체 안의 관계는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의해서도 형성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실수를 계속 곱씹으면 거리는 멀어집니다. 반대로 좋은 것을 알아보고 기억하기로 선택할 때, 서로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갈등 가운데서도 서로를 품는 공동체입니다. 용서하고, 기다리고, 관용을 보이며, 때로는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방법입니다.

교회의 연합은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 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품고 함께 걸어가는 데서 옵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교회 안의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합니까?
  2. “주 안에서” 서로를 품는다는 것은 실제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이번 주 실천

나에게 힘든 사람이었던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가능하다면 친절이나 화해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디뎌 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주 안에서 서로를 품는 공동체입니다.”

8강. 교회는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빌립보서 4:10-20

오늘의 질문

나는 사역을 “교회가 하는 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동참하는 복음의 일로 보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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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후원해 준 빌립보 교회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의 감사는 단순히 “재정을 보내주어서 고맙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는 그들의 헌금과 섬김을 복음의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후원함으로써 단지 다른 사람의 사역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복음의 사명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풍부하든지 궁핍하든지, 배부르든지 배고프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문맥상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는 어떤 형편에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부르심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복음의 동역자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복음의 일은 목회자나 선교사에게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를 부르셔서 참여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재정으로 헌신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과 재능으로 섬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가 복음에 참여하기에 모두가 동역자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재정 후원은 그 동역의 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의 헌금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복음을 향한 사랑과 관심의 실제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위해 드리는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수고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도전을 줍니다. 누군가 섬기는 것을 보고 “그것은 저 사람의 사역”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동역자로서의 우리 자리를 놓치게 됩니다. 교회는 몇몇 사람이 일하고 나머지는 그것을 지켜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에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복음에 동참할 것인가?” 그것은 시간일 수도, 기도일 수도, 물질이나 은사,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동역이란 단순히 “교회를 돕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해 이루고 계신 일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경꾼들의 모임이 아니라, 함께 복음을 위해 살아가며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이루도록 서로 돕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목회자나 소수의 헌신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지체를 복음의 동역자로 부르시며, 우리는 그분이 주신 자리에서 함께 참여합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우리 각자가 복음의 동역자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2. “내가 돕고 있다”는 태도와 “나도 이 일의 일부다”라는 태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에는 복음을 위해 시간이나 기도, 물질이나 은사 중 한 가지를 드려보십시오.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모든 지체가 함께 복음의 일에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9강.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빌립보서 4:21-23

오늘의 질문

빌립보서를 읽은 후,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오늘의 본문

본문을 불러오는 중…

말씀 묵상

빌립보서는 처음부터 교회론에 대한 정식 논문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는 편지를 마칠 때도 그들의 교제와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대한 동일한 관심으로 끝맺습니다. 처음과 끝을 연결해 보면, 빌립보서에서 교회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가 하나님이 시작하신 공동체이며, 복음을 위해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복음을 살아내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며,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고, 서로를 품으며, 함께 복음에 참여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서로 무관한 여덟 가지 설명이 아닙니다. 이 모두는 하나의 중심에서 흘러나옵니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은 단지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다”라는 교리적 진술 이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꿉니다. 우리는 우리의 취향에 맞추어 교회를 만드는 대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묻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방향을 결정할 때, 편리함과 개인의 취향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에게 교회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시기에, 우리는 책임 있는 지체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비판하거나 소비하는 사람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그 복음의 사명을 나누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질문은 “우리가 어떤 교회를 만들 것인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런 다음 그 교회를 우리의 삶으로 살아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신실하게 전해주기를 힘씁니다.

교회는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띨 수 있고, 사역의 방법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 주인이시며, 우리는 함께 그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빌립보서 강해를 마치며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만드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공동체이며, 복음을 위해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그 복음을 살아내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그분을 향해 나아가며, 서로를 품고, 함께 복음의 일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좋은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가 무엇인지 배우고, 그 교회를 살아내며, 다음 세대에게 신실하게 지켜 전합니다.

빌립보서는 이 교회에 대한 비전을 하나의 고백으로 모읍니다.

“교회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우리 삶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받은 이 교회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신실하게 전해줄 것인가?


이 질문들과 함께 빌립보서를 마친다면, 우리는 단지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사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며

함께 나누기

  1. 빌립보서에서 발견한 교회의 여러 모습 중, 우리 공동체가 가장 깊이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고백은 리더십과 지체들의 책임을 어떻게 새롭게 형성합니까?
  3. 우리가 받은 교회를 다음 세대에게 신실하게 전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우리가 원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한 문장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교회를 배우고, 살아내며, 신실하게 전해주도록 부름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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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 Dr. Daniel Kim, PhD / Disciples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